유대인의 안식일 지킴은 잘못된 해석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 |||
관리자 | 2014-09-30 08:47:32 | ||
<유대인의 안식일 지킴은 잘못된 해석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유대인이 존재하는 한 그들의 안식일 지킴은 계속될 것이다. 유대인이 안식일을 포기하는 것은 곧 자신의 유대인임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시대를 따라 안식일의 규정은 새롭게 해석되었고 적용되었다. 과학의 발전으로 새로운 생활 도구들이 발명되면, 유대 랍비들은 그것이 안식일을 지키는데 방해가 되는지를 해석하였고, 안식일에 사용 여부를 결정하였다. 예를 들면, 냉장고의 문을 열면 냉장고 안의 작은 전등은 자동으로 켜진다. 냉장고의 문을 여는 것과 냉장고 안의 작은 전구가 켜지는 것은 별개의 행동임에도, 안식일에 냉장고의 문을 열 경우 의도하지 않았어도 안식일을 범하게 된다고 판단하여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냉장고 안의 작은 전구를 빼 놓는다.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저 토요일 하루 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안식일은 유대 민족의 정신이며, 유대 문화의 핵심이다. 안식일을 제외시킨 채 유대 민족을 말할 수는 없다. 주일에 대해서는 충분히 연구되지 않았어도 안식일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와 방대한 자료들이 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잘 지킨다는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유대인들은 성경의 교훈을 따라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이 아니다. 현대 유대인들의 안식일 지킴은 안식일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 기초한 잘못된 전통에 따른 안식일 지킴이다. 오늘은 바로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요한복음 5장에는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38년 동안 병으로 고생하던 환자를 치유하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은 이 불쌍한 사람을 보시고,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사람은 곧 나았고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이 사건은 표면적인 안식일 규정에 매어 있던 유대인들에게 두 가지 걸림이 되었다. 첫 번째는 ‘병자가 안식일에 돗자리를 들고 갔다’는 것과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치료 행위를 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사건 모두 예수님과 관련되었음을 안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예수를 박해하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요 5:16). 그런데 우리는 바로 그 다음 구절에서 안식일에 대한 매우 중요한 규정을 읽을 수 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다 (요 5:17).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라.” (2011년 8월에 찍은 베데스다 연못의 유적지이다) 먼저 유대인들의 안식일 핵심 규정에 대해서 다시 본다. 출애굽기 20:8-11절에 기록되기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으니라. 안식일의 핵심 규정 가운데 하나는 안식일에 ‘일하지 않는 것’이다. ‘일’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믈라하는 영어의 work, labor와 충분히 일치하는 단어가 아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히브리어 믈라하의 의미만을 다루겠지만, 어떤 일이 되었건 십계명의 한 계명은 ‘일하지 말라’는 것을 강조한다. ‘일하지 말라’는 이 규정은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기본 원칙이 되어 왔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바벨론 포로 이후에도, 예수님 당시에도, 지금도 유대인들의 안식일 규정은 바로 이 기본 원칙에 충실(?)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식일에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간 병으로 고생하던 사람을 치유하셨는데, 그 ‘치료하는 일’을 문제로 삼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다. 곧 안식일에도 일하시는 하나님, (안식일에도 일하시는 메시아), 안식일에 일해야 한다는 안식일의 새로운 해석을 더하셨다. 유대인들이 전통에서 벗어나 안식일을 정확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바로 이 ‘안식일에도 일해야 한다’는 안식일 재해석에 주목해야 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유대인들의 안식일 규정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일하지 말라는 것과 일해야 한다는 것은 서로 모순된다. 이것은 기존 안식일 이해를 갖고 있던 유대인들을 분노시키기에 충분했다. 안식일에 일하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며, 돌에 맞아 사형에 처할 수 있었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것은 안식일의 핵심 의미가 아닌 그림자에 해당된다. 안식일의 핵심 의미는 엿새 동안 일하되 일곱째 날은 엿새 동안 일하던 것으로부터 자유함에 있다. 매인 것으로부터 놓임 (자유함), 바로의 노예되었다가 해방됨 (신 5:15), 속박된 것으로부터 구속, 영원한 사망으로부터 영원한 생명, 이것이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이다. 예수님은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간 병에 매어 있던 자를 ‘자유하게 하는 일’을 하셨고, 그로 하여금 ‘병으로부터 놓임을 받게 하는 일’을 하셨던 것이다. 이같이 ‘매인 것으로부터 놓이게 하는 일’은 안식일에도 ‘일해야 하는 안식일’의 진정한 모습이다. (사진은 Tom Bailey가 찍은 ‘교회를 향하는 아미쉬 가족’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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